순교자들의 피의 기록인 “형장명상록” (1987 독일어판)을 읽으면서 찬송과 노래는 기쁜 사람들만이 부르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박해, 핍박속에서도 찬송은 힘이요 위로요, 간증이며 영생을 찬미하는 소망임을 알게 된다. 빌립보성 감옥에 갇힌 囹圄의 몸이었던 바울과 실라는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린 만큼 힘찬 노래로 하나님을 찬미했다. (행16:25). 겟세마네의 고뇌와 골고다의 뜨물같은 치욕을 미리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도 “찬미하면서 감람산으로 올라갔다.” (마26:30). 성서해석학자 R. E Prothero 의 증언에 의하면, 카타콤의 성도들은 수난의 하루가 열리는 아침이면 시편73편을, 그 괴로운 하루가 닫히는 저녁이면 시편14편을, 공포의 위협이 몰려오면 시편 42편을 연독했었다고 말한다. 고난의 생활을 찬미로 극복해 나갔다. 신앙의 전사, 종교개혁의 대 선구자 존 위클리프 역시 순교의 최후순간에도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 (시118:17) 고 노래하면서 숨을 거두었다. 1415년 6월 6일 믿음의 용사 <요한 허스>는 교회를 모독한 이단이요, 악마라고 써붙인 모자를 쓰고 <지기스문드>왕 앞에 섰다. “아직도 기회는 있다. 네 소신을 취소하겠는가?”라고 왕이 묻자 그는 쇠사슬에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시편31편을 노래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지 말게 하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의 보장이 되소서. |
이렇게 노래를 올릴 때 그의 쇠약한 육체는 불이 붙었고 그의 영혼은 하늘나라로 옮겨갔다. 종교개혁가 마틴루터는 고난과 핍박의 질곡속에서도 지독한 시편애독자 였다. 루터는 시편118편, 4편, 110편, 2편, 46편을 특별히 사랑했다. 루터의 처절한 영적싸움에서 항상 용기를 복돋우어 주던 시는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찬송을 지은 시편48편이다. “나를 단죄하기 위하여 Worms국회에 모인 악마의 수가 그 건물의 기왓장 수만큼 많다 할지라도 나는 단연코 가리라.” “산이 비록 바다로 옮겨 빠질지라도 나는 겁날 것이 없다.” 이 모든 루터의 투지와 용기는 시편46편의 찬송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신앙인에게 믿음의 삶을 더욱 굳건히 지키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찬송이다. J. 샌더스 (Sanders)의 변함없는 증언 처럼, “찬송은 받은 은혜에 대해 감사하며 찬양을 돌리는 의지(Will)이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거나 내 놓을 것이 없는 우리라 할지라도 모든 것을 가지신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찬송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은 받은 축복에 대해 찬양을 돌리는 것이다. 우리는 어린양을 부요하게 해드릴 수 없으나 그의 이름을 찬송함으로써 그의 마음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비록 우리가 그의 영광에 대해 다 알 수는 없더라도 우리는 시편기자와 함께 찬송에 동참할 수 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시103:1) 믿음의 길은 피로 얼룩진 순교의 길이다. 언제나 극복해야 할 장애와 뛰어 넘어야 할 어려움이 많다. 믿음 생활은 언제나 위험과 위기를 수반한다. 믿음 생활은 항상 저항에 부딪힌다. 믿음 생활은 언제나 선택에 직면한다. 지금으로부터 23년 20일전에 필자에게도 극렬한 풀무속의 시련과 눈물이 있었다. 슬픔속에서도 내가 찬송할 때 소설가 이범선은 “울지 못해 부르는 노래”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나는 하나님께 물었다. “주님 시련으로부터 면제되는 것이 최대의 영적축복이 아니겠지요?” 코엘류는 <피에트라 강가에서 울었다>. 그러나 <나는 서울대학병원 영안실에서 찬송했다.> 나는 그 때 비로소 비극의 눈으로 기쁨의 넓이를 잴 수 있었다. 찬송하는 소리있어 나는 언제나 기쁘고 행복하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찬송이다. |